이번 연수에서 감명깊게 본 동영상입니다. 여러분도 꼭 끝까지 보세요. 한글 자막 있습니다.

내용 요약 : 켄 로빈슨 경은 전설적인 2006년 TED Talk "학교가 창의력을 죽인다."에 이어, 풍자와 유모가 넘치는 2010년 후속편을 통해, 획일적 학교교육으로부터 학생개별 학습교육으로의 혁명적인 변화를 끌어내고 있다. - 이 변화는 아이들 각각이 지닌 고유의 재능을 발휘하고 개발할 환경을 만들 게 될 것이다.




출처 : http://www.ted.com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life > 교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켄 로빈슨 경: 학습혁명을 말하다!  (0) 2011.08.29
기억하고 슬퍼하기 보다는  (0) 2011.01.04
이별의 편지  (0) 2009.09.16
창문  (0) 2008.04.22
스티브 잡스,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 축사  (0) 2007.04.27
블로그 이미지

brendy

Tag 교육
“기억하고 슬퍼하기 보다는 잊어버리고 미소짓는 것이 훨씬 낫다.”
- 크리스티나 로제티 -

picnik.com 에서 비번 찾기를 했더니 위 문구와 같이 메일이 왔다. 허허...

신고

'life > 교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켄 로빈슨 경: 학습혁명을 말하다!  (0) 2011.08.29
기억하고 슬퍼하기 보다는  (0) 2011.01.04
이별의 편지  (0) 2009.09.16
창문  (0) 2008.04.22
스티브 잡스,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 축사  (0) 2007.04.27
블로그 이미지

brendy

이별의 편지

life/교훈 2009.09.16 15:35

전출가시는 교감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편지글이다.


<마지막 쪽지>
사랑하고 존경하는 OO가족들께

이제 정녕 헤어져야 할 시각입니다! 물과 같이 동행하다가 또 다른 물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수많은 만남과 이별들을 경험해 보았지만 오늘처럼 아쉬운 순간도 드문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짧게는 6개월, 길게는 3년 6개월 동안 사랑하는 OO가족들과 함께한 운명적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하고 행복했습니다. 그 동안 베푼 것보다 받은 것이 너무 많아 떠나는 나그네의 무거운 짐이 됩니다. 혹시 저로 인하여 마음의 상처를 받은 분이 계신다면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저를 아무런 불평 없이 협조해 주시고 또 따뜻한 말씀으로 격려해주시던 OO님과 여러 OO님, 그리고 OOO 및 OOO 관계자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감사드리면서, 평소 제가 애창하던 한시 한 수를 아쉬운 마음을 대신하여 남깁니다.

空手來空手擧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人生事如浮雲 인생사 모든 것이 뜬 구름과 같도다!
成墳墓客散後 묘지의 봉분을 만들고 문상객이 모두 돌아간 후
月黃昏山寂寞 달빛 비치는 산하는 적막하기 그지없구나!

끝으로 여러분들과 함께한 빛나는 OOOO에서의 보람되고 아프거나 즐거웠던 모든 일들을 제 인생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들로 오래 오래 간직할 것을 약속드리며 마지막 쪽지에 점을 찍습니다. 감사합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OOOO년 O월 OO일
책상정리하며 O O O 드림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life > 교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켄 로빈슨 경: 학습혁명을 말하다!  (0) 2011.08.29
기억하고 슬퍼하기 보다는  (0) 2011.01.04
이별의 편지  (0) 2009.09.16
창문  (0) 2008.04.22
스티브 잡스,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 축사  (0) 2007.04.27
블로그 이미지

brendy

창문

life/교훈 2008.04.22 02:15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신고

'life > 교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켄 로빈슨 경: 학습혁명을 말하다!  (0) 2011.08.29
기억하고 슬퍼하기 보다는  (0) 2011.01.04
이별의 편지  (0) 2009.09.16
창문  (0) 2008.04.22
스티브 잡스,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 축사  (0) 2007.04.27
블로그 이미지

brendy


Stay hungry. Stay foolish

Thank you.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Truth be to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감사합니다. 오늘 세계 최고의 명문들 중 하나인 이 대학의 학위수여식에서 여러분과 함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으며, 이번이 제가 대학 졸업식장에 가장 가까이 와 본 경우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 인생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게 다입니다. 거창한 얘기도 아니고, 딱 세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첫 번째 이야기는 인생의 전환점들을 잇는 일입니다. 저는 리드 칼리지를 다니다가 6개월 만에 그만두었습니다만, 이후 18개월 동안 청강 생활을 하다가 아주 자퇴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왜 그랬을까요?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ve got an unexpected boy; do you want him?” They said: “Of course.” My biological mother found out later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go to college. This was the start in my life.


 

이야기는 제가 태어나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저의 생모는 어린 미혼모로 대학원생이었으며, 저를 입양 보내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대학 나온 가정에 입양시켜야겠다고 굳게 결심하셨고, 저는 태어나자마자 어느 변호사 부부에게 입양되기로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한 가지 예외라면, 제가 세상에 나왔을 때 이 부부는 마지막 순간에 여자아기를 입양하기로 결정하였다는 것입니다. 덕분에 저의 양부모께서 대기자 명단에 올라 있다가 한밤중에 전화를 받게 됩니다.
"
착오가 생긴 남자아기가 있는데, 입양하시겠습니까?"
양부모님께서는 "물론"이라고 답하셨습니다. 생모는 나중에 제 양모가 대학 졸업자가 아니며 제 양부는 고등학교조차도 못 나오신 분임을 알게 됩니다. 생모는 입양 서류에 서명을 거부하셨습니다. 생모가 몇 달 후에 마음을 누그러뜨린 것은 저를 대학까지 보내겠다는 약조를 받은 후였습니다. 제 인생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far more interesting.


17년 후 저는 정말로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하지만 참 순진하게도 이곳 스탠포드만큼이나 등록금이 비싼 대학을 골랐고, 노동자층이셨던 양부모님이 평생 모으신 돈이 모두 제 등록금으로 소모되었습니다. 6개월 후, 저는 대학 공부의 가치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제가 인생을 어찌 살아갈지 몰랐고, 대학 공부가 그것을 알아내는 데 어떤 도움을 줄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부모님들이 평생 저축한 재산을 축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학교를 그만두기로 결정합니다.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으로 믿으리라 결심하면서 말이죠. 당시에는 참 두려운 결정이었지만, 돌이켜 보건대, 그것은 제가 내렸던 최고의 결정들 중 하나였습니다. 자퇴를 결정한 순간부터 흥미가 없던 필수 과목들을 중단할 수 있었고, 제게 훨씬 더 흥미로운 강의들을 청강하기 시작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 example:


그 생활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았습니다. 기숙사에서 지낼 수 없었으므로 친구들의 방바닥에서 잠을 잤습니다. 콜라병을 반납하고 받는 5센트씩을 모아 끼니를 해결했고, 헤어 크리슈나 사원에서 주는 맛있는 식사를 얻어먹기 위해 매주 일요일 밤마다 마을을 가로질러 7마일을 걸었습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호기심과 직관대로 행동하면서 마주친 것들 중 상당 부분이 후에 돌이켜 보니 무한히 값진 것들이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죠.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당시 리드 칼리지는 이 나라 최고의 필기체 강좌가 있었습니다. 캠퍼스 곳곳에 붙은 포스터, 모든 서랍의 라벨마다 참으로 아름다운 필체로 적혀 있었습니다. 자퇴한 저는 정규 강의들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에, 서체 강좌를 수강해서 이것을 배우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저는 삐침이 있는 글꼴과 없는 글꼴에 대해 배웠고, 서로 다른 문자들을 조합하면서 자간을 조절하는 법도 배웠고, 좋은 글꼴의 조건에 대해서도 배웠습니다. 거기에는 아름다움과 역사와 예술적 섬세함이 과학이 매료시키지 못할 방식으로 배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에 매혹되었습니다.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at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이렇게 배운 것들이 제 인생에서 실제 활용되리라는 희망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저희가 최초의 매킨토시 컴퓨터를 설계할 때 이 모든 것들이 제게 되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모든 것들을 맥의 디자인에 포함시켰습니다. 맥은 아름다운 글꼴을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습니다. 제가 대학에서 바로 그 강의를 청강하지 않았더라면, 맥은 그렇게 다양한 글꼴을 지니거나, 자간이 비례적으로 조절되는 서체를 가질 수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MS社의 윈도가 그저 맥을 본뜬 것이기에, 퍼스널 컴퓨터 또한 결코 그런 글꼴을 가질 수 없었을 겁니다. 제가 대학을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그 서체 수업을 청강하지 않았을 것이고, PC들 또한 오늘날 가지고 있는 그 아름다운 서체들을 가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대학 다니던 당시에는 미래를 생각하며 그런 계기들을 잇기가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10년 후 뒤돌아보니 그런 점들이 너무나도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Because believing that the dots will connect down the road will give you the confidence to follow your heart, even when it leads you off the well-worn path. And that will make all the difference.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순간들이 앞으로의 인생에서 어찌 연결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나중에 뒤돌아보고서야 그 연관성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작은 계기들이 어쨌든 미래에는 연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무언가를 믿어야 합니다. 그게 용기든, 운명이든, 인생이든, 인연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말입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러한 점들이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이 자신의 가슴에서 나오는 판단을 따를 자신감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로 인해 탄탄대로를 벗어나게 될 지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인생이 변화할 것입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I was lucky -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And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두 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행운아였습니다. 일찌감치 제 인생에서 사랑하는 것을 찾아냈으니까요. 제 친구 워즈와 저는 스무 살 때 제 부모님의 차고에서 애플이라는 회사를 차렸습니다. 열심히 일했고, 10년 만에 애플은 달랑 두 명뿐인 차고에서 4000명이 넘는 종업원을 거느린 20억 달러 규모의 대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우리의 최고 걸작품인 매킨토시 컴퓨터를 출시한 지 일년 후, 당시 막 서른이 되었는데,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어떻게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해고당할 수 있을까요? 애플社가 성장하면서 저와 같이 회사를 운영해 갈 대단한 재능을 지닌 것으로 여겨지던 사람을 채용했고, 1년여 기간은 순조로웠습니다. 하지만, 그 뒤부터 미래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불화가 생겼습니다. 우리 사이가 틀어지자 회사 이사진은 그의 편을 들었습니다. 그 결과, 저는 나이 30에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아주 공개적으로 말입니다. 제 성인기 전체의 목표가 사라졌고, 정말 참담했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몇 달간은 정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제가 선배 기업가들을 실망시켰다고 생각했습니다. 바통이 막 제게 넘어오려는 순간에 그걸 떨어뜨린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데이빗 패커드와 밥 노이스를 만나 그토록 엉망으로 만든 것에 대해 사과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철저히 실패한 사람이었고, '아예 이 업계를 떠나 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뭔가 제 머릿속에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제가 하던 일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애플社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도 그 사실을 조금도 바꿀 수 없었지요. 비록 거부당했지만, 저는 여전히 사랑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당시에는 몰랐지만, 결과적으로 애플社에서 해고당한 것이 제 인생 최고의 전환점이었던 걸로 드러났습니다. 성공해야 한다는 정신적 부담이 再출발하는 초심자의 홀가분함으로 바뀌었는데, 모든 것에 확신을 가질 필요가 적으니까요. 그것을 기회로 제 자신이 자유로워지면서 제 인생에서 가장 창의적인 시기들 중 하나로 접어들게 되었지요.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 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그 후 5년간 저는 「넥스트」라는 회사와 「픽사」라는 또 다른 회사를 차렸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제 아내가 될 대단한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졌습니다. 픽사는 발전을 거듭하여 세계 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스토리」를 제작했고, 현재 全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되었습니다. 놀라운 반전이 일어나 애플이 넥스트를 인수했고 저는 애플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넥스트에서 개발했던 기술이 바로 오늘날 애플의 부흥을 이루어 낸 핵심입니다. 그리고 로렌스와 저는 멋진 가정을 꾸렸습니다.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Sometimes life’s gonna hit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I’m convinced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And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So keep looking. Don’t settle.

저는 제가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들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양약은 쓴 법입니다. 살다 보면 때로는 머리에 돌을 맞는 일도 일어납니다.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저는 확신합니다. 저를 계속 이끌어 온 힘은 바로 제가 하는 일을 사랑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할 만한 것을 찾으십시오. 연인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을 찾는 것 또한 진실로 중요합니다. 일은 여러분 인생의 큰 부분을 채울 것이며, 따라서 진정 만족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당신이 대단하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단한 일을 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그런 일을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아보십시오. 안주하지 마십시오. 마음으로 하는 모든 일이 그렇듯이, 그것을 찾아내는 순간, '이것이다'라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훌륭한 관계라도 다 그렇듯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좋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속 찾아보십시오. 안주하지 마십시오.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세 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제가 열일곱 살 때 이런 구절을 읽었습니다. '인생의 매순간을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라. 그러면 언젠가 분명 옳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저는 이 글에 감동을 받았고, 그날 이후, 지난 33년간, 매일 아침 거울을 들여다보며 제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과연 내가 오늘 하려는 일을 할까?" 그리고 그 대답이 여러 날 계속해서 "아냐"라고 나온다면, 무엇인가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Because almost everything -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죽을 날이 그리 멀지 않음을 기억하는 것은 인생의 중대한 결정들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는 도구들 중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것들, 모든 외부로부터의 기대·자존심·당혹감이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 이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서 맥을 추지 못하며, 정말 중요한 것만 가려내 주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여러분이 무언가를 잃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함정을 피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미 가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가슴으로 느끼는 대로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It means to try and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1년 전에 저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오전 730분에 스캔을 받았는데, 제 췌장에 종양이 있음을 분명히 보여 주었습니다. 저는 췌장이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의사들은 이것이 '치유 불가능한 종류의 암'이라고 말하면서 제가 앞으로 3개월에서 6개월 이상은 살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의사는 제게 '집으로 돌아가 주변을 정리하라'고 했는데, 이 말은 '죽을 준비를 하라'는 의사들의 표현입니다. 이 말은 또한 자녀들에게 앞으로 10년간 할 모든 이야기를 단 몇 달 만에 다 하라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이는 또 모든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짓고 유족들이 가급적 편안해지도록 하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작별 인사를 해 두라는 소리이기도 하지요.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I had the surgery and thankfully I’m fine now.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이것이 제가 죽음에 가장 가까이 가본 경험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수십 년 살아가는 동안 다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보니, 이제 여러분에게 죽음이 유용하긴 하나 순전히 상상 속의 개념이었을 때보다 좀더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죽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은 사람들조차 죽어서 거기에 가려고 하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우리 인간이 공유하는 최종 도착지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것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원래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생명이 만들어 낸 최고의 발명품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생명의 변화 인자입니다. 죽음은 옛것을 처분하여 새로운 것을 수용할 자리를 만듭니다. 지금은 여러분이 새로운 것이지만,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여러분은 점점 낡아지게 되고 점차 처분될 것입니다. 너무 노골적으로 말씀드려 죄송하지만, 그것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ed out your own inner voice.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여러분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합니다. 남의 인생을 사느라 그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독단의 덫에 빠지지 마십시오. 남들의 생각에서 나온 결론에 맞추어 사는 것을 말합니다. 남들의 의견에서 나오는 잡음에 여러분 내면의 소리가 묻히도록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를 내어 여러분의 가슴과 직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진정 자신이 무엇이 되고 싶어하는가를 이미 똑똑히 알고 있습니다. 그 밖의 모든 것들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제가 어릴 때 「The Whole Earth Catalog」라고 하는 대단한 잡지가 있었습니다. 저희 세대에게는 가장 권위 있는 책들 중 하나였지요. 이곳에서 멀지 않은 멘로 파크에서 살던 스튜어트 브랜드라는 사람이 만들었죠. 그는 나름의 시적인 감각을 동원하여 그 책에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당시가 1960년대 후반으로, PC라든가 데스크톱 출판 기술이 나오기 이전이었습니다. 당연히 타자기, 가위, 그리고 폴라로이드 카메라만 가지고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문고판 검색엔진 구글(Google)과 같은 것이었는데, 구글이 등장하기 35년 전의 일었습니다. 이상적인 사고들이 담겨 있었고, 깔끔한 도구와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흘러넘쳤습니다.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스튜어트와 그의 팀은 「The Whole Earth Catalog」를 몇 회 정도 발간했고, 나올 만큼 나왔다 싶었을 때 최종호를 냈습니다. 그것이 1970년대 중반이었고, 제가 여러분 나이쯤 되었을 때입니다. 그 최종호의 뒤표지에는 이른 아침 어느 시골길 풍경을 담은 사진이 실려 있었는데, 여러분이 모험심이 좀 있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하며 가보았을 것도 같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 사진 아래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끊임없이 갈망하고, 바보처럼 도전하라.)」 이것이 그들이 할 일을 모두 마치고 남긴 작별 인사였습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저 또한 언제나 그렇게 살기를 바라왔습니다. 이제, 졸업을 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여러분께 같은 말씀을 드립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Thank you all very much.

끊임없이 갈망하고, 바보처럼 도전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신고

'life > 교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켄 로빈슨 경: 학습혁명을 말하다!  (0) 2011.08.29
기억하고 슬퍼하기 보다는  (0) 2011.01.04
이별의 편지  (0) 2009.09.16
창문  (0) 2008.04.22
스티브 잡스,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 축사  (0) 2007.04.27
블로그 이미지

brendy